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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정보
Title : 삽살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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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語源)
삽살개의 원래의 뜻은 액운을 쫓는 개다.
살(煞)은 액운을 뜻한다. 즉 사람을 해치는 기운이다.
삽은 퍼낸다 또는 없앤다는 뜻을 지닌다.
삽살이, 삽사리로도 불리는 삽살개는 말 뜻 그대로 악귀를 쫓는 개를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삽사리는 50~60년 전에만 해도 한반도 남쪽의 시골마을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었던 개였다. 청삽살개와 황삽살개로 구분되는데 청삽살개는 검은 색의 긴 털에 옅은 회색 털이 적절히 배합되어 어두운 회색 또는 검푸른 빛깔을 띠며 달빛에 푸르스름한 빛을 낸다.

*역사적(歷史的) 유래(由來)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된 삽사리는 원산지가 중국 티벳지방으로 추정되며 대략 1200년 전 신라(산동반도를 포함한 황하와 양자강 중간지대)왕궁과 귀족들 사이에서 키워졌던 개로 당나라가 망할 때 같이 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라의 유민들이 반도의 동신라로 유입됨으로써 한반도에 다수가 남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김유신 장군이 군견으로 싸움터에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통일신라시대만 해도 궁중에서만 귀하게 기르다가 신라가 망하면서 민가로 흩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토종개는 그 지역의 기후 풍토에 적응하며 오랫동안 우점종으로 살아남은 개 집단을 총칭한다. 우리나라 토종개는 한반도에서 오랜 기간 동안 적응하며 살아남은 모든 형태의 개가 모두 포함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토종개는 어디서 왔을까.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가축 중 최초로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이 개인데 일단 가축화가 되자 빠른 속도로 세계 전역에 전파되어 거의 모든 종족이 개를 기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에 가축화된 개가 유입된 시기는 북방인 들이 남하하기 시작한 일 만 년 전일 것으로 추정한다.

1982년 경북 경산군 임당동 제2호 분에서 2마리 분의 개 뼈가 출토된 적이 있다. 또 전남 해남군 군곡리 패총에서도 개의 두개골이 발견됐다.
개와 관련된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우리 옛 문헌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다. 삼국유사 권 제1 고구려조에 보면 "유화부인이 다섯 되 크기의 알을 낳았는데 금와왕이 개와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진평왕 조에 보면 "53년 춘 이월에 흰 개가 궁중의 담 위에 올라갔다. 5월에 이손과 아손이 모반한 것을 왕이 알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징(特徵)
삽살개의 특징은 겉모양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당당하면서 우아한 편이다. 수캐는 머리가 커서 숫사자를 연상시킨다. 몸체는 튼튼하고 등은 수평이며 발은 털에 쌓여 있으므로 굵고 강해 보인다.
꼬리는 보통 위로 올라가는데 선 꼬리, 말린 꼬리가 많다. 짖는 소리는 우렁차며 잘 드러나지 않는 눈이지만 짙은 갈색의 눈빛은 항상 주인을 주시하면서 정이 묻어나고 있다.
질병에 강하고 강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 황삽사리는 대국적이고 점잖은데 비해 청삽사리는 다소 사나운 편이다. 영리하고 충직하며 한겨울 내내 집도 없이 눈비를 맞아도 감기 한 번 안 걸릴 만큼 체력이 강인해 진짜 '한국개' 다운 면모를 갖춘 개이다.
동양 개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장모종으로 긴 털외투를 걸친 듯한 모습이지만 여름철 불볕 더위 속에서도 활기가 넘친다.

*체형(體型)
삽사리는 중형개이다. 토종견인 진돗개와는 체고 와 체중이 다소 차이를 보인다. 삽사리가 진돗개보다 체고는 약 6cm, 체중은 5kg이 더 나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재창(1978)씨의 연구에 의하면 진돗개 수캐의 경우 체고는 48.8cm, 체중은 15.8kg으로 나타났다. 암캐의 경우는 체고 45.6cm, 체중은 14.8kg으로 조사됐다.
삽사리의 경우 탁연빈(1972)씨의 연구에 의하면 수캐의 경우 체고는 52.6cm, 체중은 19.2kg, 암캐는 체고 49.2cm, 체중17.4kg으로 나타났다.
삽사리의 털 색은 크게 청색과 황색이 있다. 청색의 원래 색조는 흑색. 단모종일 경우 검둥이로 불릴 흑구가 장모종에서는 색소 농담에 따라 흑청색, 흑회색, 회색, 흑색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몸 부위에 따른 색깔의 분에 따라 온몸이 검은 완전 흑구가 있는가 하면 가슴에 흰 반점이 있거나 발목 아래만 희고 온몸은 검은 검둥이가 있다. 황삽사리의 경우에도 색소 농담에 따라 다양한 색조로 표현된다.

*성품(性品)
삽사리의 성품은 주인에게 온순하여 절대 순종하며 애교심을 잘 표현하는 편이다. 또한 충직하여 한번 사귄 주인은 좀처럼 잊지 않아 몇 년 만에 만나도 금새 알아보고 반긴다. 산책이나 운동시에는 늘 주인 곁에 머물며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데 앞으로 나아 갔다가도 주인이 부르면 곧바로 돌아오며 주인이 뛰다 쉬면 삽사리도 주인 곁에 엎드리어 편한 자세로 쉬곤 한다. 사회성도 발달하여 주인의 가족에게도 주인처럼 반기며 복종한다. 반면 낮선 이에게는 경계를 하며 짖어서 주인에게 알려주나 주인이 함께 하는 것을 발견하면 쉬이 조용해진다.
또 친화력도 좋은 편인데 무리 지어 행동하며 동료와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또한 병에도 강한고 배변통제도 잘하는 편이다.

삽사리는 정신이 강인하며 다른 개와 싸우면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으며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말리기가 쉽지 않는 독한 기질을 갖고 있다. 송곳니가 다른 개에 비하여 특이하며 크고 강하다.
등은 수평이며 발톱은 검다. 꼬리는 선 꼬리와 말린 꼬리가 대부분이며 타 견종에 비하여 집단사육이 용이하다.
치아는 역교합(주걱턱)이 대략 40% 빈도가 나타난다. 털가죽은 잘 늘어나며 풍산개 진돗개에 비하여 가죽이 상당히 두껍다. 길고 두터운 외투는 추위에서 지켜 주고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갑옷 역할을 한다. 눈은 동그랗고 코와 구열은 검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귀신을 쫓을 만큼 용감하고 당당하다.
삽사리는 경계심이 특히 강하고 사람을 좀체 물지 않는 토종개로 집 지키는 번견으로 아주 적당하다.

주인에게 관심이 많고 충성심이 강하다. 경계심이 많으나 가볍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진돗개 보다 큰 키, 길게 빼문 혀와 흐트러진 장모종 털이 특징이다. 듬직한 사자와 같은 인상과 아울러 한편으론 해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개다. 진돗개 못지 않게 영리하고 충직한 데다 오랫동안 한국기후에 적응되어 한 겨울 내내 집도 없이 눈비를 맞아도 감기한번 안 걸릴 만큼 체력적으로 강인해 진짜 한국개 다운 자격을 갖추었다.

*역사적 수난사(受難史)
일본은 1930년대 들어오면서 일본 토착 견에 대한 연구와 보존 열기가 높아졌다. 당시 아끼다견, 기주견,시바견, 북해도 견들의 토착견보호회가 조직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이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내선일체를 표방하는 일본으로서는 일본 개를 닮은 조선 개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 진돗개가 조선을 대표하는 개가 됐다. 진돗개의 표준체형을 위하여 일본 기주견의 표준을 가져와 이와 똑같이 생긴 개는 진돗개 순종으로 인정토록 하고 닮지 않은 개들은 도살토록 했다.

1940년부터 토종개의 수난은 본격 시작된다. 피혁이 군수 및 생활 필수 자원으로 인정된 1938년 이후, 일제는 강력한 수급조정을 위해 모피 사용 제한에 관한 법령을 조선총독부령으로 발표하게 된다. 이어 1940년에는 견피의 판매 제한에 관한 법령을 발표한다.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설립된 조선원피주식회사로 하여금 견피를 독점 매입토록 했다. 이와 같은 견피 수집이 국책이 되면서 일제는 등록견 이외의 개는 모조리 야견이란 명목으로 박살 했다. 1년에 10만 매에서 50만 매의 견피를 수집했다. 이때 토종 삽사리의 대부분이 도살된 것이다.

*삽살개의 보존(保存)
아무도 삽살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시기에 처음으로 삽살개 보존의 필요성을 깨친 분이 경북대학교의 탁연빈(卓鍊斌)교수였다. 수의과 대학에 재직하고 있던 탁교수는 애견협회의 심사위원직을 맡고 있었는데 이름 없는 아프리카산 토착 견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진짜 우리 토종개는 무슨 개일까?'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과학기술처의 연구비 지원을 받게 된 이들 두 분의 교수들은 1960년대 말부터 여러 해에 걸쳐 주로 경주지방과 강원도 남부의 산간벽지에서 외국 개 혈통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판단이 되는 순수한 토종 삽살개 30여 마리를 발견, 수집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수집된 삽살개들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여 1972년에는 과학기술처에 삽살개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처음으로 제출하기에 이른다.
두분 교수의 지도교수이며 후원자였던 하성진(河成珍)교수는 당시 대구목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연구가 끝난 개들의 사육에 고충을 겪고 있던 제자들의 삽살개를 대부분 인수받게 되었다. 이들 삽살개들이 1972년 이후부터 당시 대구시 범어동에 소재 하던 대구목장의 울타리 안에서 집 지키는 개들로 사육 보존하게 된 것이다.

1985년 봄부터 경북대 유전공학과에 재직하게 된 하지홍교수가 경산군 하양읍으로 이전한 아버님의 대구목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삽살개들은 그 당시 8마리가 전부였었다.
허술한 사육 환경으로 인해 삽살개의 맥이 끊겨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목장 일을 맡아보던 동생과 함께 수년간에 걸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사육관리와 삽살개 재 탐색 작업덕분에 삽살개 숫자가 서서히 불어나기 시작하여 1989년 봄에는 30여 두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멸종은 되지 않겠다는 자신과 함께 진돗개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는 정부로부터 정당한 자리 매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홍교수가 '삽살개의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서'를 작성하여 문화재관리국에 제출한 것이 1989년 6월이며 지정발표가 1992년 3월7일(제368호)에 났으니 만 2년 9개월이 걸린 셈이다.
같은 해 1992년 5월 2일에는 '사단법인 한국 삽살개 보존회'의 창립을 위한 창립총회가 37인의 발기인들에 의해 대구에서 열렸으며 8월24일에는 문화부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설립허가를 받았다.

*사단법인 한국삽살개보존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개로 '삽살개'를 보존하고 있는데 이 법인의 노력으로 1992년 3월 7일 천연기념물 제 36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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